ENERGY HOUSE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ENERGY HOUSE
저희에게 에너지절약은
선택사항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핵심요소입니다.
[언론기사] 01_자연에 깃들어 사는 이의 책임과 의무

[ 살리는 사람을 찾아서 |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지은 이대철 ]

자연에 깃들어 사는 이의 책임과 의무

글 김선미

 

 

1997년 겨울, IMF 구제금융 사태로 몸서리치게 춥고 무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병아리 털빛처럼 따뜻한 표지의 책 한 권을 읽으며 세상의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얘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라는 책으로 말을 거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전원에서 살며 배운 모든 것’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우리 사회에 귀농이라는 말이 아직 낯설게 들리던 그 무렵, 자신이 겪은 시골살이 보고서를 낸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 그의 두 번째 시골집으로 직접 찾아가게 되었다.  
그가 새로 지은 집,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가 이미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오래 전 시골 가서 살자던 중년의 사내는 어느덧 예순을 훌쩍 넘겼고, 자신의 집으로 세상을 향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디에 사는가는 어떻게 사는가를 말해 준다고 했다.


경칩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이대철 씨가 새로 보금자리를 튼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살둔마을 가는 길은 바위 덩어리 같은 얼음장들이 내린천 계곡 구석구석을 여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겨울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봄을 재촉하는 비마저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었다. 내린천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에서 보이는 것은 첩첩이 앞을 가로막는 산뿐이다. 방태산과 구룡덕봉, 개인산, 숫돌봉까지 1,000m를 훌쩍 넘긴 산들이 하늘까지 높은 울을 두르고 있다. 이대철 씨가 10년 전에 쓴 책에서 언제고 반드시 강원도 큰 산자락 품으로 들어가 살고 싶다했던 말이 떠올랐다. 살둔마을은 <정감록>에서 어지러운 세상의 난을 피해 살 수 있는 피장처로 꼽은 3둔 4가리 가운데 한 곳이다. ‘살만한 둔덕’이란 뜻의 마을 이름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이가 피해보려는 오늘날의 환란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다.


길가에 눈에 익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먼저 반긴다.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라고 쓴 정겨운 손글씨 푯말이 아니라면 길을 지나쳐버렸을 정도로, 이대철 씨의 집은 주위 풍경 속에 숨은 듯 들어앉아 있었다. 작지 앉은 규모임에도 애써 도드라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집 좀 구경하러 왔는데요?”
인적이 드문 산간 도로를 오랫동안 달려 왔는데, 어디선가 낯선 차 한 대가 불쑥 나타나 우리를 따라 들어오며 물었다. 소문만 듣고 무작정 이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대철 씨는 지난 1월부터 자신의 살림집을 공개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여름 휴가철 마냥 내린천 골짜기로 시도때도없이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한 달 사이 방문객만 천명도 넘었다고 한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의 정돈된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결국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이틀로 손님맞이를 제한하기로 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정중히 안내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이처럼 무작정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먼 길을 찾아 온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 안주인이 낯선 이들을 집안 구석구석까지 보여주고 배웅까지 한다.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우리의 첫 인사도 이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석유문명의 위기를 피해 지은 살둔의 보금자리


“정부에서 에너지 문제에 너무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 저라도 팔을 걷어 부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배워가서 새로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라도 꼭 필요한 정보를 나눠주고 싶었어요.”
그 사이 방송 촬영만 11번을 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취재를 나왔을 정도로 그의 집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이제 꼭 배우 같다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지만, 내심 허탈하다는 투였다.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관심이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냥 재미있는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것 같아요. 강원도에 좋은 집 생겼다더라, 구경 한번 가자. 그걸로 끝인 것 같아요.”
그는 원유 생산량이 정점에 달하는 ‘오일 피크’ 이후 닥쳐올 재앙에 대비해 제로에너지 하우스를 지었다.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이지만 이대철 씨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범지구적이었다. 아마도 용인에 처음 지었던 집, 하늘말농장에서 30년 가까이 시골살이를 하며 석유에 의존하는 난방방식의 문제를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 건축가인 친구가 설계한 옛집은 사방으로 넓게 창이 트인 집이었다. 전망도 좋지만 큰 창 때문에 난방과 단열을 걱정하는 그에게 설계자는 ‘돈 많이 벌어서 열심히 난방하며 살면 되지’ 하던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지금 이 집은 최고의 건축가가 지은 그 집과는 정반대에요. 우린 옛집에서 30년 동안 무지 춥게 살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전망이란 게 얼마나 우스워요. 집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좋은 걸 보게 되는데 말이죠.” 
아름다운 풍경을 굳이 창틀 안에만 가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는 에너지를 펑펑 쓰며 아무런 가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살둔마을에 지은 두 번째 시골집은 처음부터 스스로 스케치하고 연구해서 지은 온전한 ‘내 집’이 되었다. 
“얼마나 뜯어고쳤는지 몰라요. 고생이요? 아니 세상에 이런 재미가 또 어디 있어요. 평생 전원생활을 두 번씩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그는 공사현장에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을 타이르고, 등 두드리며 일하는 것 자체도 재미였다고 말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기본을 지켜 지은 집, 산사람 평생의 공부를 나누고파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는 일종의 패시브솔라하우스(passive solar house)다. 지붕에 태양열을 흡수하는 장치를 설치한 일반적인 태양열주택을 액티브솔라하우스라고 한다면 패시브솔라하우스는 태양을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보온병처럼 단열이 잘 되는 집, 그래서 낮동안 태양빛으로 데워진 실내공기의 열을 집 밖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해서 난방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패시브솔라하우스가 에너지를 90% 정도 절약한다고 해요. 그러나 우리 집은 100% 절약을 목표로 지은 집이에요.”


그가 제로에너지 하우스라는 이름을 내걸게 된 이유다. 화석에너지 뿐 아니라 완전한 에너지독립을 꿈꾸는 집. 그의 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은 물론 집안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인체활동, 주방의 조리기구와 여러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열에너지까지 모두 집안 공기를 데우는 데 사용한다. 이 열을 하나도 빼앗기지 않고 집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바로 제로에너지 하우스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단열이 잘 되도록 기본을 충실히 지켜 지은 것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실제로 바깥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한 겨울에도 별도의 난방을 하지 않은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실내는 영상 22도를 유지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난 겨울 언론들이 앞 다투어 그의 집을 소개했다. 환율폭등과 석유값 인상으로 시름하던 사람들에게 날아든 희망의 불씨였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데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돈으로 영원히 에너지를 사서 쓸 수 있는 줄 아는 거지요. 하지만 석유는 곧 고갈돼요. 구체적으로 ‘오일탑’이 언제냐 시기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정확한 것은 지나봐야 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거지요. 그때 가서 우리나라는 돈을 주고도 기름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그는 결국 에너지가 경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가 1년에 100조 가까이 기름 값을 지불하고 있는데, 한 집안 예산에 40%씩 기름 값으로 내고나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녹색 그린홈 프로젝트가 이상하게 태양전지, 태양광발전에만 집약돼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에너지 절약하자면 제일 소모량이 많은 데 집중해야 하는데, 태양전지 사용해봐야 한 달에 3~4만원 전기세 절약할 뿐이지만 제로에너지 하우스는 난방비를 50만 원 이상 절약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10년 넘게 에너지 관련 서적만 한해에 3~4백 권씩 탐독했다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들이었다.


그의 집안에는 주방과 거실 사이에 러시아에서 설계도를 가져왔다는 벽난로가 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날을 위한 보조적인 난방수단이지만 그보다는 시골생활의 운치를 더해주는 정서적인 도구로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벽난로 역시 내부에서 장작이 연소되면서 내뿜은 열량이 난로에 축적된 채로 36시간까지 서서히 열을 발산하도록 만든 것이다. 취재 당일 오전에 잠깐 장작 한 더미를 땠다는 난로의 벽에 기대보았는데,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각까지도 찜질방에 온 듯 등이 뜨듯하게 덥혀지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제로에너지 하우스에는 한전에서 공급하는 전기만이 유일하게 외부에서 사서 쓰는 에너지인데, 이 역시 소형풍력발전기로 대체해 조만간 완전한 에너지 자립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동네 원래 이름이 새나들이, 바람골이에요. 살아보니 우리 부부가 집에서 쓰는 전기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대로 창밖 데크에는 윈드쌕이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음산한 바깥 날씨와 달리 집안은 훈훈하고 안온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환기문제는 어떻게 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점이다. 집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 창문이 꽉 막힌 새집에 앉아 있는데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실내공기가 쾌적했다. 비밀은 천정에 돌아가는 팬과 벽면 아래쪽에 외부공기를 실내로 유입하는 환기구에 있었다. 지하실의 열회수용환기장치(Heat Recovery Ventilation System)를 통해 탁한 실내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면서 신선한 외부공기를 실내로 공급하는 것이다. 천정에서 빨아들인 더운 공기가 지하실 전열교환기를 거쳐 외부에서 들어온 찬 공기를 데우는 방식이다.   


“공짜는 없어요. 들어간 에너지만큼 나오지요.”
그는 자연계의 에너지 이동은 정직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대철 씨가 두 번째 집을 짓기까지 삶의 궤적을 보더라도 에너지보존법칙은 유효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을 ‘산에 미쳐서 평생 산만 다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모교인 서울농대 임학과를 자칭 ‘산악과’라고 부르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는 제대 후에는 인도네시아 밀림의 산림조사원으로 자원해 일을 하기도 했었다. 아내 역시 북한산 산행에서 처음 만나 주말마다 함께 산을 오르며 애정을 키웠다고 한다. 아이들 역시 돌도 지나기 전부터 배낭에 둘러메고 산으로 데리고 다녔다. 이들 부부가 학교보다 자연을 만나는 것이 더 큰 공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서울의 아파트에서 당시로는 궁벽한 시골 땅이었던 용인으로 찾아 들어가고, 이제 그 집이 콘크리트 숲으로 포위를 당하자 강원도 홍천 땅 내린천 깊은 골짜기로 떠난 것 모두, 산이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처음 시골살이를 결정할 때, 그는 대기업 뉴욕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귀국과 함께 조기퇴직을 권유 받았었다. 그의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소위 명예퇴직을 당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불행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였고, 오랫동안 꿈꾸었던 산과 숲과 나무와 함께 사는 시골생활을 선택했다. 결국 산이 낳은 자식인 나무의 숨과 결을 손끝으로 온전히 읽어내는 목수가 되기까지 했다(현재 전국의 국립공원에 걸려있는 새집들 대부분 이대철 씨가 만든 것인데, 한 대기업에서 전량 구매해 공원 측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등산교본 <마운트니어링>은 알피니스트를 일러 ‘산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대자연의 시민권(Wilderness Citizenship)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시민권이란 ‘특권과 보답’도 따르지만 ‘책임과 의무’도 따르는 것이라 했다. 이대철 씨가 산에 깃들어 살면서 에너지자립주택을 지으려고 노력한 것 역시 대자연의 시민권자에게 부여된 당연한 책임과 의무에 따른 것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쏟아 부은 삶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제로에너지 하우스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애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라는 책은 IMF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도 2만부가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는 책의 인세로 받은 돈을 에너지 관련 책을 사 모으는데 썼다. 결국 제로에너지 하우스의 실험은 그가 수많은 책과 집요하게 씨름한 독한 공부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하루에 한 권 정도의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그는 독서도 일종의 ‘눈과 뇌의 스포츠 활동’이라고 믿는 정열적인 독서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집 옆에 제로에너지 하우스 관련 서적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전문도서관을 만드는 꿈도 꾸고 있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편리한 탄탄대로보다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찾아 걷기를 좋아하고, 가시덤불이 길을 막아서면 스스로 헤쳐 앞으로 나아가는 곤란함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대철 씨 역시 그런 산사람이다. 그래서 산사람들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가 자연과 깊이 만나는 집을 스스로 만들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은 스스로 길을 찾는 산사람들의 도전정신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아직도 연구 중이고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 될 살둔마을의 보금자리는 ‘대자연의 시민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이들의 든든한 베이스캠프처럼 보인다.  

 


“숲을 부수어 그 땅에 사람이 사는 집을 짓는다는 개념이 아닌, 숲에 사람이 세 들어 산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면 자연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인간의 손이 닿게 되면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균형만 파괴될 뿐 더 좋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대철 씨의 책, <애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 디자인하우스 펴냄 중에서.

 

 


이대철 씨는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의 건축과정을 공유하고자 인터넷을 통해서도 정보를 나누고 있다. 누리집 zeroenergyhouse.kr 관리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둘째 아들 이훈 씨가 맡고 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방문객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있으며, 에너지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생활협동조합이나 관련 단체 등의 모임을 환영한다.